부용정칠석옻돌마을

부용정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세종 때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김문발(金文發)이 낙향하여 1420년경 중창한 것으로 것으로 추정된다.
부용정은 연(蓮)을 꽃 중의 군자(君子)라고 칭송하던 북송(北宋)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담긴 뜻을 취하여 이름지었다고 하며, 마을사람들은 모정, 모정동이라고 부른다.


김문발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적을 물리친 공이 매우 크며 전라감사(全羅監司),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형조참판(刑曹參判) 등을 역임한 조선의 문신(文臣)이다. 그는 낙향하여 여씨(呂氏)의 남전향약(藍田鄕約)과 주자(朱子)의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을 모방하여 풍속의 교화에 힘썻는데, 이 정자는 광주지역 향약의 시행 장소로 유서 깊은 곳이다.


부용정 안에는 송천 양응정, 제봉 고경명, 명암 김형, 동악 이안눌, 동악 김석규, 창평현령 박제형이 쓴 현판 기문이 걸려 있다. 이를 통해 조선중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호남의 명유들이 이 정자를 찾았으며, 사림(士林)들의 교유(交遊)의 장소가 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정자는 정·측면이 각각 세 칸이고, 우물마루를 깐 맞배지붕의 민도리집이다. 기단은 바른층 막돌 쌓기를 하고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은 다음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사방에 벽이 없이 개방된 공간이며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부용정 현판과 양응정(梁應鼎), 고경명(高敬命), 이안눌(李安訥) 등 후대의 명유(名儒)들이 남긴 편액 ‘누정제영(樓亭題詠)’이 걸려 있다.

부용정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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