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사와 칠석동 향약칠석옻돌마을

대공사와 칠석동 향약

1. 대공사: 칠석마을 주민총회

칠석옻돌마을의 정기적인 마을 주민총회는 현재도 ‘대공사’(大公事)라 불리며,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개최된다. 이 마을주민총회는 마을주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여 마을의 각종 대소사에 관해 결정·토의하는 민주적이고 주민자치적인 마을의 최고의결 기구이다. 여기에는 보통 성인 남성들만이 참여하여 왔지만 최근에는 소수의 여성들, 특히 상·하촌의 부녀회장 등 전체 주민총회의 성격으로 확대되었다.

대공사인 마을총회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부터 널리 행해진 촌락사회의 자조적 자립적 주민조직인 향도계(香徒契)나, 사창(社倉), 동계(洞契) 등이 칠석옻돌마을에서도 구성되어 조선시대 향약, 수리계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당산제를 모시고, 칠석1,2제(堤) 등 저수지와 칠석 보(洑)의 축조 등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공사를 시행하고, 주민 스스로의 인보적 마을결사체로서 상부상조의 구휼 사업 등을 실천하여 온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도 매년 음력 2월 1일(초하드렛날) 상하촌의 모든 주민이 모여 총회를 개최하는 데, 토의하는 안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칠석 주민의 주 생업인 농업활동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수리계에 관련된 각종 내용들 즉, 수리계장, 총무, 보주 등의 임원선출과 한 해 수세를 결정하고, 칠석 보 등의 수리, 각종 마을 공사와 고지(논 한 마지기에 값을 정해 모내기로부터 김매기까지 일하여 주기로 하고 미리 받은 삯), 가래 삯, 각종 노임 등을 결정하는 것이 대공사의 주요 사항이다. 아울러 마을 머슴들의 이동과 배치, 세경(歲經)을 결정하고, 술과 밥을 장만하여 머슴들을 잘 대접하여 한해 농사의 노고와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농업용수를 합리적이고 형평성 있게 대는 문제, 수세의 합리적 결정, 수리계 경비의 합리적 집행, 집행부의 구성 등을 둘러싼 뜨거운 쟁점으로 늘 대공사는 대결의 장이면서도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적인 공간이다. 3월 5일 이루어진 2013년도 대공사에서는 고싸움놀이 축제의 결산과 고싸움보존회의 1년 업무 결산 등 다양한 마을의 사업과 계획 등에 대한 토론과 협의가 이루어졌다.

2. 칠석동 향약

광주읍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 태종대(1411년)에 김문발이 칠석동에서 향약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광주읍지에 의하면, 김문발은 황해감사를 역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을 사람들과 더불어 여씨의 남전향약과 백록동 향약을 시행하여 풍교를 장려하였는 바, 광주의 향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곧 부용정을 창건한 김문발은 인근의 양반 사족들을 중심으로 자체규약인 향규를 시행하였으며, 이는 1451년 필문 이선제에 의해 광주향약으로 발전하고, 이후 1604년에 시행된 양과동 향약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에 의하면, 칠석동 향약은 김문발의 주도하에 만들어져 양반사족 중심으로 실시되었으나 크게 떨치지는 못하고, 후에 이선제가 ‘광주향약조목’을 작성해 광주향약을 시행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문발이 시행하였다는 향약의 조목 등 기록과 역사적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여 학계의 검증작업이 요청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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